축구는 단체 경기다. 따라서 월드컵 축구나 올림픽을 비롯해 각종 리그에서 우승의 영광은 팀에 부여된다. MVP나 최다 득점자 등 선수 시상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상이다. 선수 개인에게 주는 상으로서는 발롱도르만 한 영예가 없다.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에게 황금공을
발롱도르Ballon d'Or. 한 시즌(과거에는 한 해) 동안 전 세계 축구계에서 가장 찬란했던 선수에게 수여되는 일종의 ‘최우수 선수상’이다. 발롱도르는 프랑스어로 ‘황금공’이란 뜻. 때문에 영어권에서는 골든볼Golden Ball이라고도 한다. 무엇이라 부르건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현재 축구계에서 선수 개인에게 수여하는 상 중에서 발롱도르의 권위를 뛰어넘거나 더 화려하고 매력적인 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축구 선수가 받을 수 있는 가장 영예로운 상이다.
발롱도르는 프랑스 축구 잡지 <프랑스 풋볼>이 1956년부터 시상해왔다. 그해 유럽 축구계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 ‘올해의 유럽 축구 선수European Footballer of the Year’에게 수여하는 상으로서 제정됐다. 초대 수상자는 1950년대 유럽 축구계의 스타로 군림하던 스탠리 매튜스라는 영국 선수다. 잉글랜드 블랙풀에서 활약하던 이 재능 넘치는 선수는 당시 실력이면 실력, 기록이면 기록, 여기에 매너, 외모, 인기에 이르기까지 축구 선수를 평가하는 거의 모든 잣대에서 골고루 준수한 기록을 남기고 있었다.
하지만 매튜스는 유달리 ‘상복’이 없기로도 유명했다. 아무리 이리 뛰고 저리 뛰어도 시즌이 끝나고 나면 다른 선수가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모습을 보기 일쑤였다. 심지어 발롱도르가 처음 제정됐을 때도 많은 사람이 매튜스가 무난히 선정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의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와 접전을 벌여 각각 47점과 44점이라는 박빙의 차이로 겨우 수상할 수 있었다. 어렵게 차지한 덕분인지 매튜스의 영예는 오래도록 빛난다. 그는 발롱도르 역사상 최고령 수상자(41세 10개월)이기도 하다.
당시 심사위원은 유럽 16개국의 축구 전문 기자 16명이었다. 그들은 <프랑스 풋볼>이 선정한 25명의 후보 선수 중에서 각자 1위부터 5위까지 총 5명에게 투표했고, 합계 점수가 가장 많은 선수에게 황금공 트로피를 안기는 방식이었다(후보 선수의 규모는 이후 조금씩 바뀌었는데 한때 50명까지 늘었다가 2016년부터는 30명을 선정한다). 참고로 디 스테파노는 이듬해 두 번째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이렇게 발롱도르는 유럽 각국을 대표하는 축구 전문 기자들이 뽑은 유럽 최고의 선수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출발했다.
발롱도르는 해가 갈수록 권위를 더해갔다. 1970년대부터 독일 분데스리가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중심으로 유럽 프로축구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발롱도르에 모이는 눈길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런 배경에서 발롱도르 또한 1995년부터 시상 대상을 전 세계로 넓혔다. 그동안 유럽 선수가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국적을 따지지 않고 수상 후보를 뽑기 시작한 것. 발롱도르의 영토가 훌쩍 늘어난 1995년 황금공 트로피를 들어올린 선수는 아프리카 라이베리아 출신인 조지 웨아였다. 그는 놀랍게도 같은 해 ‘FIFA 올해의 선수World Player of the Year’에도 뽑히는 영광을 얻었다.
FIFA가 ‘다기능 스트라이커의 선구자’라고 묘사한 웨아는 당시 이탈리아 AC 밀란에서 80m 드리블로 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는 지금까지도 영상이 남아 있는 최장 거리 드리블 골이다. 2003년 은퇴한 그는 축구장 밖에서도 계속 달려, 2005년에는 고국 라이베리아의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고배를 마셨지만 2014년에는 상원의원으로 선출됐고 끝내 2017년 대선에서 승리해 이듬해 취임했다. 발롱도르 수상 선수가 대통령이 된 사례다.
처음 제정됐을 때부터 발롱도르는 FIFA 시상과 무관했지만, 2010년에서 2015년까지는 ‘FIFA 올해의 선수’와 통합해 수여하기도 했다. 이때의 발롱도르는 ‘FIFA 발롱도르’라고 부른다. FIFA와 <프랑스 풋볼>의 계약이 종료된 2016년부터는 다시 발롱도르와 FIFA의 각자 시상으로 되돌아갔다. 참고로 FIFA는 이때부터 ‘올해의 남성/여성 선수The Best FIFA Men’s/Women’s Player’로 이름을 바꿨다.
발롱도르는 최근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물론 사뭇 긍정적인 방향이다. 1956년 이래 남성 선수를 대상으로 하는 단일 시상식이었지만 2018년부터 두 개의 부문이 추가됐다. 먼저 여성 선수에게 수여하는 ‘발롱도르 페미닌Ballon d'Or Féminin’이 신설돼 성차별 없는 시상식으로 거듭나게 된 것. 그리고 1958년 발롱도르 수상자였던 프랑스 선수 레몽 코파의 이름을 따 최고의 21세 이하 선수에게 주는 ‘코파Kopa 트로피’도 신설했다.
2019년부터는 가장 뛰어난 성적을 거둔 골키퍼에게 (구)소련의 전설적인 골키퍼 레프 야신의 이름을 딴 ‘야신 트로피Yashin Trophy’를 수여한다. 2021년에는 ‘올해의 축구 팀Club of the Year’과 ‘올해의 공격수Striker of the Year’도 뽑아 시상하기 시작했다. 가장 많은 득점을 올린 선수에게 주는 ‘올해의 공격수’는 이듬해부터 ‘게르트 뮐러Gerd Müller 트로피’로 이름을 바꿨다. 1970년 발롱도르 수상자이자 ‘폭격기’라는 별명을 가진 독일 선수의 이름을 딴 것.
2022년에는 스포츠를 통한 세계 평화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국제기구 ‘평화와 스포츠Peace and Sport’와 협력해 사회에 공헌한 인도주의자 선수에게 수여하는 ‘소크라테스상Sócrates Award‘을 만들었다. 직접적으로는 아무 상관 없는 축구 팬조차 흐뭇해지는 변화라 하겠다. 상의 명칭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가 아니라 1980년대 브라질의 군사독재에 반대해 이념적 축구 운동을 공동 창립한 브라질 축구 선수 소크라테스에게서 따왔다.
2023년에는 남성 축구 팀 시상 부문보다 2년 늦었지만 ‘올해의 여성 축구 팀Women's Club of the Year’도 신설됐다. 가장 최근 시상식인 2024년에는 최고의 성과를 낸 감독에게도 상을 주기 시작했는데, 이건 처음부터 ‘남성/여성 요한 크라위프Johan Cruyff 트로피’로서 추가됐다. 네덜란드의 크라위프는 선수 시절 세 번의 발롱도르를 받았으며 1985년부터 30년 가까이 감독으로서도 탁월한 업적을 거둔 인물이다.
그러니까 지난 10년도 안 된 사이에 9개 부문이 신설되어 2024년에는 남/녀 발롱도르를 비롯해 총 10개의 상을 수여한 것이다. 시상 부문만 풍성해진 게 아니라 산정 기간도 변화를 맞았다. 2022년부터 발롱도르는 ‘한 해’가 아닌 ‘한 시즌’을 기준으로 수상자를 선정하고 있다. 세계 유수의 프로축구 리그 대부분이 가을에 시작해 이듬해 봄에 마치는 추춘제 시즌으로 개최되는 현실을 반영한 결과다. 즉 2024 발롱도르는 2023/24 시즌을 대상으로 했다.
권위에 권위가 켜켜이 쌓이면서 발롱도르의 심사단 규모도 점점 더 부풀었다. 애초 16명이던 기자단 규모는 세월이 흐르며 30명과 50명 사이를 오르내렸다가 <프랑스 풋볼>이 유럽축구연맹UEFA과 공동 주최하기 시작한 2024년에는 FIFA 랭킹 1~100위 국가에서 한 명씩 선출된 저널리스트 100명이 투표에 참가했다. 투표 방식도 달라져 기자단 각자가 30명의 후보 중 1~10위에게 15~1점을 부여한다.
심사 기준도 적잖이 바뀌었다. 최우수 선수를 선정하면서 어쩔 수 없이 고민해야 하는 딜레마는 소속 팀의 성적을 반영해야 하는가의 문제다. 개인 상인 만큼 선수 실력만으로 선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축구가 단체 경기인 이상 팀 성적도 심사에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반영한다면 얼마나 반영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 또한 정답이 따로 없는 난제 중의 난제다. 발롱도르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현재 발롱도르가 채택하고 있는 선정 기준은 모두 세 가지로, 중요도 순으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개인 성적과 캐릭터. 둘째, 팀 성적. 셋째, 품격과 페어플레이 정신.
이런 기준으로 2024 발롱도르 시상식에서 황금공 트로피를 수상한 선수는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시티의 로드리다. 총점 1170점을 얻은 그는 공격수가 아닌 수비형 미드필더임에도 최고의 축구 선수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특히 높이 평가할 만하다. 2위는 1129점을 얻은 비시니우스 주니오르(레알 마드리드), 3위는 917점을 얻은 주드 벨링엄(레알 마드리드)이다. 발롱도르 페미닌은 2023/24 UEFA 여성 챔피언스 리그 MVP이자 2023 FIFA 여성 월드컵에서 스페인의 첫 우승에도 기여한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의 아이타나 본마티(바르셀로나)가 받았다. 그밖에 부문별 수상자는 아래 표를 확인하시라.
이제 축구의 ‘축’ 자만 알아도 맞힐 수 있는 퀴즈 하나를 즐겨보자. 총 68회의 시상 역사상 발롱도르를 가장 많이 받은 축구 선수는 누구일까?
정답은 리오넬 메시다. 여덟 시즌 뛰고 은퇴하는 선수가 숱한 축구계에서 이 경이적인 선수는 놀랍게도 여덟 번이나 황금공 트로피를 거머쥔 것이다. 게다가 그중에는 4회 연속 수상(2009~2012)이라는, 역시 믿어지지 않는 기록도 포함돼 있다. 앞서 처음으로 발롱도르를 받은 스탠리 매튜스가 최고령 수상자라는 얘기를 했는데, 메시는 2023년에도 수상하며 두 번째로 나이 많은 수상자가 됐다(36세 4개월). 수상자의 국적을 기준으로 발롱도르를 가장 많이 받은 나라는 아르헨티나(8회)인데, 그게 다 메시 혼자서 받은 거다. 각각 다섯 명의 수상자를 배출한 프랑스와 독일은 다 합쳐도 7회씩 수상했다.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다섯 번 수상해 메시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많은 황금공을 차지했다. 1987년 생인 메시의 최근 수상은 2023 발롱도르였고, 1985년 생인 호날두의 최근 수상은 2017년이었다. 메시는 2위도 다섯 번 했는데 모두 호날두가 발롱도르를 받은 해였다. 호날두 역시 2위에 오른 적이 여섯 번 있는데, 그중에서 네 번은 메시에 밀린 것이었다. 메시와 호날두는 3위에도 각각 한 번씩 올랐다. 메시는 현재 미국 메이저리그 축구Major League Soccer의 인터 마이애미에서, 호날두는 사우디아라비아 프로 리그Saudi Pro League의 알 나스르에서 뛰고 있다.
방금 2위, 3위도 거론했는데 발롱도르에서도 포디엄Podium이라는 말이 쓰인다. 바닥보다 돌출된 단을 가리키는데, 올림픽 금 · 은 · 동 또는 모터스포츠에서 3위 이내에 들었을 때도 ‘포디엄에 올랐다’고 표현하곤 한다. 발롱도르 역사상 최다 포디엄은 또 한 번 메시다. 총 열네 번이나 포디엄에 올랐는데, 그중 열한 번은 연속 입상(2007~2017)이었다. 호날두는 아홉 번의 연속 입상(2011~2019)을 포함해 총 열두 번 포디엄에 올라 여기서도 역대 두 번째의 기록이다.
마지막으로, 발롱도르는 우리나라 선수들과도 인연이 적지 않다. 2002년에는 설기현(벨기에 안더레흐트), 2005년에는 박지성(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이 발롱도르 후보에 올랐다. 2019년에는 한국 선수로서는 처음으로 득표에 성공한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이 4점을 얻어 22위에 올랐다. 그는 2022년에도 5점으로 11위에 올랐다. 2023년에는 김민재(바이에른 뮌헨)가 후보에 들었다. 30인의 후보 중에 수비수는 단 세 명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자체로도 놀라운 성과지만, 세 명 중에서 가장 많은 득표로 3점을 얻어 22위에 오른 것도 대단했다.